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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사한 상상
from 2018 2018. 2. 11. 07:19

 

지중해 주유소가 있었다.  

그곳에 들릴 때마다 근사한 상상이 떠올랐다.

조금 더운 날씨여도 좋을 것 같다.

파란 하늘 아래, 땀과 기름 때로 얼룩진 조종사가 말한다. 

"돌아오지 않을 만큼 넣어주세요" 

그러나 서울에 비행기를 위한 주유소는 없다.

단지 이름이 그랬을 뿐이다.

 

근사한 상상이 다가올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자리를 잡고서 몸을 기대거나 턱을 고인다.

아마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을 침묵의 자세일 것이다.

그러니까 물끄러미 빠져든 혼자라면

방해하지 말아주세요.

 

 

 

쿼키라이터의 키캡을 새로 꾸몄다.

Datamancer의 키캡을 구매해서 색깔과 디자인을 바꿨다.

이곳은 고전적인 테마의 키보드, 액세서리 등을 수작업으로 제작해서 판매한다.

꽤 비싼 가격 때문에 망설였는데

용기를 내보았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쿼키라이터의 본래 키캡은 물론이고

다른 원형키캡들에 비해 크기가 작다는 것이다.

덕분에 오타 나는 경우가 줄었다.

키캡 사이의 간격도 넓어져서 더 타자기스러워 보인다.

 

 

 

원형 키캡들은 플라스틱 위에 글자가 인쇄된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Datamancer의 키캡은 금속 케이스에 투명 아크릴(아마도?) 부품과

글자가 인쇄된 종이, 스위치에 끼울 수 있는 플라스틱 베이스로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손이 닿아서 글자가 뭉개지거나 때가 타는 경우가 없다.

키캡 뒤로 금속 케이스의 단단히 조여진 부분을 벌리면

분해해서 원하는 디자인을 넣을 수 있다.

 

키캡을 주문하면 완성된 상태로 도착한다.

한글이 필요하다고 문의했더니 친절하게도 없는 레이아웃을 만들어주었다.

하지만 글자의 크기며 서체 등이 서구의 엔틱 취향이었다.

그래서 색상이며 글자를 마음대로 바꿔 봤는데 그럴듯한 결과물이 나온 듯 하다.

꽤 힘이 들고 인내심이 필요했다.

'나는 왜 이럴 수 밖에 없을까' 라고 내내 머리 속을 맴돌던 푸념..

 

 

 

나만의 키캡을 완성했다.

근사한 상상이 문을 두드렸다.

"주문한 상상이 도착했습니다" 라면서 말이다. 

 

당분간은 이 객실에서 머무를 생각이다.

 

그러니

방해하지 말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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