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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단서 1 2020.06.21
  2. 지금의 소리 2019.12.29
  3. 마지막 주행 2018.12.23
단서
from 2020 2020. 6. 21. 07:48

 

'동사서독'을 다시 봤다.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는 

해독할 수 없는 글자들과 마주한 심정이었지, 아마도? 

틀림없이 그랬던 것 같다.

그런데 지금은 너무나 잘 보여서 

자동차 수리점의 대기실에 앉아서 

패션잡지를 보는 듯 했다. 

무심히 페이지를 넘기듯이 장면과 장면을 지나쳤다. 

다시 보니 어때? 라고 해서 이렇게 말했더니 

"원래 사랑이 그런 거야" 란다. 

 

똑같은 이야기를 해도 

모두의 이목을 사로잡는 재주가 있었다. 

요즘 가끔 TV에 얼굴을 내밀곤 하는 친구였다. 

그와 함께 있는 자리에서 이야기할 차례가 되면

조바심이 나곤 했다. 

 

아주 어릴 적에 길을 잃었던 경험이 있다. 

틀림없이 집을 찾아갔는데, 

문 앞에서 들여다보면 

전혀 본 적이 없는 이들이 있었다.

다시 길을 나섰다가 집을 찾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지만 그때마다 똑같았다. 

결국 파출소로 나를 찾아온 가족의 손을 잡고 찾아간 집은 

문 앞에서 들여다봤던 그곳이었다. 

 

같은 이야기를 잘하고 못하고가 아니라 

애초부터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거야. 

전혀 어려울 거 없잖아?  

 

나이를 먹었다는 걸 이렇게 실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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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소리
from 2019 2019. 12. 29. 03:41

아마도 십 년 전쯤이었을까?

“1층이어야 합니다 (베스파를 실내에서 관리할 수 있도록)”

내부에 독립된 화장실이 있어서 샤워를 할 수 있었으면... (밤새는 게 일이니까)”

이 두 가지 조건을 만족하는 곳을 찾아 홍대 일대를 헤매고 다녔다.

그렇게 마련한 지금의 작업실은... 뭐랄까...

이렇게 오랫동안 떠나지 않게 될 줄이야!’

그래서 어색하다. 두서너 해 정도 살고 나면

당연하다는 듯이 집을 옮기던 가난의 습관 덕분이다.

 

 

작업실의 인테리어를 조금 바꿨다.

처음 의도와는 다르게 일 년 내내 혼자 있는 시간이 대부분이다.

그래도 괜찮았으면, 달팽이처럼 짊어지고 다닐만한 생활의 껍질이었으면 싶었다.

이케아를 들락거리며 새로운 가구를 골랐고

이제는 자리만 차지하는 큰 책상이며 의자들을 모두 버렸다.

그동안 집에서 먼지만 쌓여가던 낡은 스피커를 가져왔고

저렴한 가격에 새로운 앰프와 튜너를 구했다. (CDP는 덤으로 얻었다!)

 

 

물론, 당연히, 내가 하는 일인데, 순조롭지 않았다.

스피커는 지직거렸고 도저히 음악을 들을 수 없었다.

결국 거의 복원하다시피 수리를 했고

스피커 유닛에 착자(자력을 발생시키는 것)까지 해야 했다.

싼 게 비지떡이라고 앰프도 말썽이었다.

덕분에 모두 병원 신세를 졌다.

 

작업실의 스피커는 오래된 스펜더 BC-1이다.

지나는 길에 우연히 구매했던 것인데

초기형 블루알리코 버전으로 이 분야의 애호가들이 손에 꼽는 명기다.

장인의 복원으로 1970년대의 소리를 쨍쨍하게 들려준다.

앰프는 쿼드33 + 303, 튜너는 쿼드FM3.

역시 1970년대에 태어났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유행이 지난 소리이고 베스트 매칭이라고 하지도 않는다.

그래도 물끄러미 듣고 있으면 푹 빠져든다.

이 정도면 생활의 껍질을 울리기에 넉넉하지 않을까?

 

 

소리내지 않으면 소리내는 방법을 잃어버린다.

그래서 소리내야 할 때 지직거리고 아예 먹통이 되어버리기도 한다.

그러니까 억지로라도 소리내야 한다.

자꾸 나를 읽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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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주행
from 2018 2018. 12. 23. 18:07

 

 

추위가 오기 전에 베스파를 타고 나섰다.

올해의 마지막 주행이 아닐까...

오랜만에 점화플러그를 교체했다.  

가볍게, 한번만에 시동이 걸린다.

 

교체한 새들시트의 스프링이 몹시 부드러웠다.

이런 출렁임을 미국식 승차감이라고 하지 아마도,  

달리는 동안 내내 델마와 루이스가 떠올랐다.

정확히 말하면 느긋한 도주가...

 

몇가지 교체한 부품들이며 액세서리를 테스트했다.

이베이에서 구입한 오리지널 혼도 이상무.  

원래 달려있던 것도 오리지널이지만 살이 조금 눌린 부분이 있었다.

오리지널이고 황동제품으로 최대한 온전한 형태를 갖춘 녀석을 찾았다.

해외구매이다보니 사진을 주의깊게 확인했다.

 

잔뜩 눌러붙은 때는 금속연마제로 닦아주었다.

애초부터 광을 냈다면 더 비싸게 팔 수 있었을텐데

금속연마제를 이용하면 그다지 힘들지 않게

본래의 광을 찾을 수 있다.

 

  -Original 6V Horn / 좌측은 판매자가 올린 사진, 우측은 금속연마제로 때를 벗겨낸 후

 

 

연료게이지도 원래의 부레를 활용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지금까지 연료게이지에 장착되어있던 부레는 직접 NBR 고무를 가공해서 만든 것이다.

원래의 부레는 플라스틱 케이스 내부에 코르크가 들어있었다.

그 코르크를 NBR 고무로 교체해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그래서 플라스틱 케이스의 뚜껑은 그대로 두고

아래 몸통 부분을 반대로 뒤집어 장착했는데 정상작동한다.

결국 플라스틱 케이스에 들어간 기름의 무게가 문제였다.

들어오는 기름을 막을 수 없다면 잘 나가게 하면 된다.  

 

발판이라고 해야 하나?

Floor board에 붙이는 고리도 장착했다.

스탠드를 고정하는 볼트로 조이는 방식이다.

덕분에 거의 바닥에 눕다시피해서 낑낑거려야 했다.  

센터에서 장착하면 쉬웠을텐데 말이다.

 

   -Floor board에 장착하는 Luggage Hook, 브레이크등의 스위치도 회색으로 교체

 

 

베스파는 이제 거의 손볼 데가 없다.

다만 60년대생이다 보니, 중간에 리스토어를 했어도

나이를 무시할 수는 없다.

볼트를 조금 세게 조이거나 하면

나사선이 뭉개지거나 페인트가 깨지는 일이 생긴다.

 

다행히 내 베스파는 페인트가 떨어져 나간 부분이 없지만

그래도 조금씩 나이 먹은 티가 나고 있다.

만일 리스토어를 하게 된다면 그때 장착해야지 하고

부품이며 액세서리 등을 모아둔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나이든 고양이처럼 한물간 록스타처럼

틀림없이 그날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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