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에는 주말의 번잡함을 피해 마크 로스코(Mark Rothko) 展에 다녀왔습니다.
오랜만에 일과 일 사이에, 정거장 같은 휴일이었죠.
미리 소감을 말씀드리면, 차라리 버스 정류소에서 물끄러미 바라보는 풍경을 추천합니다.
물론 개인적인, 아주 개인적인 견해지만 출구 벽면에 가득한 유명인들의 관람후기를 보면서
'뭐야? 정말 이런 느낌을 받았어?'라고 조금 화가 나셨다면
아마 저와 비슷한 날씨가 아니었을까...
좀더 정확히 말해 제가 실망한 것은
마크 로스코의 그림이 아니라 전시기획이었습니다.
시작부터 Text... 그리고 마크 로스코의 의도적으로 편집된 다큐멘터리 영상...
그리고 계속 '엄숙하시오, 집중하시오, 사색하시오'라고 방해하는 공기의 음악들...
만일 Text와 영상과 음악이 없었다면, 그래서 그림과 그림 사이를 여행하듯
다닐 수 있었다면 꽤 괜찮았을텐데...
전시장을 따라 걷다가 화가 치밀어 오른 나머지,
"그림을 보라는 건지, Text를 읽으라는 건지 모르겠다"고 중얼거렸습니다.
열심히 Text에 주목하는 관람객들 곁에서.
더군다나 Text의 수준은 그림 해설을 통째로 번역해놓은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그는 화가였고 지금도 화가로 남아있는데, 전시회는 그를 성인으로 모시는 듯 합니다.
이렇게 불쾌한 전시회는 아마 처음이 아니었을까?
그의 그림을 초기작부터 마지막 작품까지 따라 걸으면서
'그림이 점점 관(棺)이 되는 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의 작품은 생전에 '추상화처럼 보이지만 추상화가 아니'라던 그의 주장에 동감합니다.
아마도 마크 로스코는 가득한 사람이 아니었나 추측합니다만
그 가득함이 지나친 결과, 풍선이 터져버리듯 결말이 난 것은 아닌지...
생전의 그(작품)는 어땠는지 알 수 없지만
지금의 마크 로스코는 역사책 속에 기억될만하구나.
그리고 정거장으로...
서둘러 전시장을 빠져 나와서 성수동의 Common Ground를 찾아 갔습니다.
Common Ground는 푸른 컨테이너 박스를 쌓아올려 만든 쇼핑몰입니다.
온통 푸른 건물이 하늘과 몹시 잘 어울렸습니다.
오히려 그곳이 제겐 전시장처럼 보이더군요. 적어도 끊임없이 강요하는 무언가는 없으므로.
만일 마크 로스코의 그림을 보러 갈 생각이라면 차라리 화집을 사서 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 편이 오늘의 눈에 더 어울리지 않을까...
혹시 전시기획자는 전시장의 처음부터 끝까지, 마크 로스코를 충만하게 느끼라는 의도였을까?
이런 생각도 들었지만, 정말 그랬다 하더라도
그 의도가 표정에 드러나면 안타깝습니다.
끝으로 오늘의 마크 로스코는 철지난 화가이고, 그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중요해야 하는 것은 결국 오늘의 눈이어야 하니까.
너무도 당연한 소리를 자꾸 되풀이한 것은 아닌지, 그래서 불쾌하셨다면 죄송합니다.
Common Ground에 있을 때는 몰랐는데
돌아와서 사진을 보니 자꾸 하늘에 눈이 갑니다.
이렇게 하늘에 눈이 가는 경험은 오랜만입니다.
'2015' 카테고리의 다른 글
History of My Vespa (0) | 2015.06.08 |
---|---|
가야할 그곳 (0) | 2015.05.27 |
clover (0) | 2015.05.27 |
Fuel Gauge (2) | 2015.05.24 |
Vespa Life (0) | 2015.05.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