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te #8
헤이리는 외곽을 따라 흡사 중세의 성(城)과도 같이 아홉개의 게이트가 있다.
이중 8번 게이트로 들어오면 두 갈래로 갈림길이 나타나는데
그곳에서 오른쪽을 선택하면 헤이리에서 가장 한적하고 조용한 산책로(사진)가 시작된다.
도덕적 인간은 왜 나쁜 사회를 만드는가...
손에 잡은지 한참이 되었는데 지지부진한 지금의 독서...
한동안 책을 멀리하고 지냈습니다. 그럴듯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마음이 분주해서.
그러다 버트런트 러셀의 '게으름에 대한 찬양'을 순식간에 읽었다.
너무 오랜만의 독서였는지, 읽는 동안 머리 속에서 힘차게 인쇄기가 돌아가는 기분이었다.
예전에는 안개 속에서 흐릿하던 것들이 이제 또렷한 윤곽으로 느껴진다.
성실하지 못한 번역이라든가, 집중할 수 없게 만드는 구성이라든가...
책도 공간과 마찬가지여서, 머리 속에서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가장 중요하지만
애초부터 지루한 언어의 공간은 노력을 기울여도 예뻐지기 힘들다.
다시 헤이리로 돌아와서, 헤이리는 크게 비즈니스 지역과 주거 지역으로 나뉜다.
건물을 지을 때는 3층까지만 가능하도록 법으로 규제하고 있는데, 덕분에 넓은 하늘을 만날 수 있다.
3층은 많은 경우 주거공간으로 사용되며
지하부터 2층은 작업실이나 사무실, 까페, 전시공간 등의 용도이다.
주말의 헤이리는, 일부러 멀리서 찾아오신 분들한테는 미안하지만, 흡사 시장통과도 같다.
특히 1번 게이트와 4번 게이트가 심한데
도대체 사람들은 왜 이렇게 몰려오는 걸까 라고 투덜투덜...
헤이리를 걷다보면 앉고 싶어도 의자를 찾아볼 수 없다.
애초부터 이 마을은 방문객을 위한 용도는 안중에 없었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많은 장소들은 방문자에게 모종의 단서들을 제공한다.
그래서 그곳을 방문한 이들은 채집한 단서들로 장소의 사용법을 추리해낸다.
현재의 헤이리는 주말과 주중의 단서가 다르다.
주말에는, 나라면 절대 오고 싶지 않고 오지도 않을, 번잡한 외곽 동네...
그래서 헤이리를 다녀갈 생각이라면 가급적 주중에 다녀가시길.
그리고 게이트 근처의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가급적 느린 산보를 즐기시길...
현재의 헤이리가 가진 유일한 별미는 아마 건축의 풍경이 아닐까.
천천히 걸으면서 건축을 음미하는 것, 그렇게 조금 느린 여유를 맛보는 것이
일부러 낸 시간에 대한 배려가 아닐까.
저라면 주중이라도 1번부터 6번 게이트는 제외시켜두겠습니다.
그리고 시작하겠습니다.
헤이리의 소소한 풍경을 읽겠습니다.